이슬비 오는 날. 

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

낯선 少年(소년)이 나를 붙들고 東對門(동대문)을 물었다.

 

 - 동대문은 그 당시에 봉제 공장이 많았다고 하고, 지금과 같이 여전히 시장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.

 

밤 열한시 반,

통금에 쫓기는 群像(군상) 속에서 죄 없이

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

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.

 

 - 예전에는 자정(12시)가 되면 밖을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. 만약 그렇게 하다가 걸리면 유치장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고 교수님께서 그러시더군요.

 

국민학교를 갓 나왔을까.

새로 사 신은 운동화 벗어 품고

그 소년의 등허리선 먼 길 떠나 온 고구마가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… 소년이 떠나온 곳에서 가져온 것.

흙묻은 얼굴들을 맞부비며 저희들기리 비에 젖고 있었다.

 

 - 예전에는 신발이 귀해서, 새로 산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다니는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. 

 

충청북도 보은 俗離山(속리산), 아니면

전라남도 해남땅 漁村(어촌) 말씨였을까.

나는 가로수 하나를 걷다 되돌아섰다.

그러나 노동자의 홍수 속에 묻혀 그 소년은 보이지 않았다.

그렇지.

눈녹이 바람이 부는 질척질척한 겨울날,

宗廟(종묘) 담을 끼고 돌다가 나는 보았어.

그이 누나였을까.

부은 한쪽 눈의 娼女(창녀)가 양지쪽 기대 앉아

속내의 바람으로, 때 묻은 긴 편지를 읽고 있었지.

 

 - 소년과 같은 또 다른 소외 계층이 등장합니다. 그 여자는 생계를 위해 몸을 팔아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고, 고향에서 온 편지를 읽고 있습니다. 아마 많이 읽었기에 때 묻은 편지라고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.

 

그리고 언젠가 보았어.

세종로 고층건물 공사장,

자갈지게 등짐하던 勞動者(노동자) 하나이

허리를 다쳐 쓰러져 있었지.

그 소년의 아버지였을까.

半島(반도)의 하늘 높이서 太陽(태양)이 쏟아지고,

싸늘한 땀방울 뿜어 낸 이마엔 세 줄기 강물.

대륙의 섬나라

그리고 또 오늘 저 새로운 銀行國(은행국)의

물결이 딩굴고 있었다.

 

 - 또 다른 소외 계층이 등장하는데, 노동을 하다가 허리를 다친 사람이 등장합니다. 그의 이마에 있는 세 줄기 강물은 그 당시 강대국을 나타내는 데, 중국, 미국, 러시아 중 하나를 나타낸다고 합니다.

그 밑의 대륙의 섬나라는 일본을 나타내는데, 60년대에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력을 행사했다고 합니다. 

 

 남은 것은 없었다.

나날이 허물어져 가는 그나마 토방 한 칸.

봄이면 쑥, 여름이면 나무뿌리, 가을이면 타작마당을 휩쓰는 빈 바람.

변한 것은 없었다.

李朝(이조) 오백년은 끝나지 않았다.

 

 - 이조 오백 년, 조선 시대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관계를 나타냄.

 

옛날 같으면 北間島(북간도)라도 갔지.

기껏해야 버스길 삼백리 서울로 왔지.

고층건물 침대 속 누워 肥料廣告(비료 광고)만 뿌리는 그머리 마을,

또 무슨 넉살 꾸미기 위해 짓는지도 모를 빌딩 고사장,

도시락 차고 왔지.

 

 - 일제 시대에는 우리 민족의 삶이 많이 힘들어 북간도로 새로운 삶을 꾸리려 가는 경우가 있었죠. 그만큼 살기가 힘들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군요.

 

이슬비 오는 날,

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東大門(동대문)을 물었다.

그 소년의 죄 없이 크고 맑기만한 눈동자엔 밤이 내리고

노동으로 지친 나의 가슴에선 도시락 보자기가

비에 젖고 있었다.

 

 이 시는 산업화의 발전 속에서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리는 시입니다. 나라가 해방이 되고, 남북전쟁이 끝난 후 산업화의 영향으로 나라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어려움을 겪는 계층이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.